[의정부/장초복 기자] 정치는 국민을 위한 공적 책임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정치권의 금품 수수·청탁 의혹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폭로되면서, 우리 정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또다시 드러났다. 그 중심에는 특정 정파가 아닌 정치권 전체를 향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자리한다.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드러난 정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여야 정치인 이름이 줄줄이 거론됐고, 심지어 현직 장관의 사퇴로까지 이어졌다. 누가 먼저 돈을 건넸고, 누가 먼저 도움을 요청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단체와 정치권이 금전적 이해를 매개로 손을 잡았을 가능성 자체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국 정치에서 종교와 정치가 얽혀 문제를 일으킨 사례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특징은 정권의 이해를 초월해 폭넓은 접촉이 이루어진 정황이 드러난다는 점, 그리고 정치인들이 일제히 ‘모두 부인’하며 방어에 나서는 익숙한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즉각 나서 “여야 불문·지위고하 불문 수사”를 지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여당·야당 어느 한쪽을 향한 발언이 아니라, 정치권 전반이 국민 신뢰를 상실한 상황을 인정한 것에 가깝다. 정교분리 원칙과 종교단체의 정치개입 문제를 다시 법제 차원에서 검토하라는 주문 역시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사기관이 실제로 정파적 유불리를 고려하지 않고 수사할 수 있는지, 그 독립성과 의지가 시험대에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수사 주체 간 책임 회피성 움직임이다.

특검은 “대상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지원 의혹을 경찰로 넘겼고, 경찰은 특별전담팀을 꾸렸지만 “늑장 대응” 지적이 따라붙는다.

특검의 편파성 논란, 여야의 정치적 프레임 싸움은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데 일조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더 유리하냐’는 정치 공방이 아니다. 오직 사실과 진실에 기반한 수사다.

의혹이 제기된 여야 정치인들은 모두 금품 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는 법적으로는 당연한 대응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의미는 다르다.

국민은 그동안 수많은 비리 의혹이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 수사 받아보겠다 → 기소 → 일부 사실 인정” 이 반복된 신뢰 파괴의 패턴이 지금도 다시 재연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치적 책임은 형사적 책임보다 넓고, 무겁다. 의혹이 제기된 직후 스스로 부담을 내려놓은 인사가 있는 반면, 대부분은 여론을 ‘버티는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정치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번 의혹의 핵심은 단순히 통일교라는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를 비롯한 다양한 단체가 정치권에 접근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구조, 정치권이 이러한 접근을 거부하거나 관리할 시스템의 부재, 정치인이 이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해온 현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다.

정교분리는 선언적 원칙이 아니다. 정치적 영향력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이번 사태는 이 장치가 얼마나 허술한지 증명했다.

대한민국 정치가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신뢰 회복이다.

1. 종교·시민단체·이익집단과 정치권의 접촉 공개 시스템 강화
2. 정치자금 흐름에 대한 실시간 공개 수준 강화
3. 수사기관의 정치적 독립성 확립
4. 공직자의 윤리 규범 강화 및 의혹 단계에서의 즉각적 조치

이런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얼마든지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것이다.
통일교 금품 의혹은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그 자체의 문제이자, 국민이 정치에 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에 대한 문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느 정당이 더 많이 연루됐는가가 아니라, 어떤 정치가 지금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가이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릴 때 민주주의는 흔들린다.

이번 사건을 그저 또 하나의 정치 스캔들로 흘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지는 이제 정치권 전체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