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윤재갑 기자] 성남시의료원은 한국 공공의료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병원은 어느 기업이나 정부의 시혜로 세워진 병원이 아니다. 시민들이 직접 조례를 발의하고, 오랜 시간 논쟁과 갈등을 견디며 건립해낸 전국 최초의 시민 발의 공공병원이다.

그 상징성과 의미 때문에 성남시의료원은 단순한 지역 의료기관을 넘어 공공의료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어왔다.

그러나 성남시의료원은 지난 4년 동안 정상적인 공공병원으로 자리 잡을 기회를 번번이 박탈당했다. 민선 8기 신상진 성남시장이 취임한 이후 ‘민간위탁’이라는 이름의 정책 방향이 제시되면서, 병원은 회복이 아닌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민이 세운 병원을 민간에 맡기겠다는 시정 방침 아래, 의료진은 떠나고 병원은 신뢰를 잃었으며, 22개월 동안 원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다.

성남시의료원은 개원 직후부터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며 정상적인 종합공공병원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 헌신 덕분에 성남시의료원은 감염병 위기 속에서 공공병원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증명했다. 시민들은 팬데믹 이후 성남시의료원이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든든한 공공병원으로 거듭나길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위탁 논쟁이라는 정치적 소모전 속에서 병원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럼에도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성남시의료원 위탁 문제에 대해 “법과 절차에 따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을 반복해왔다. 이 애매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성남시의료원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 힘을 실어주었고, 민간위탁 추진이라는 잘못된 방향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공공병원의 위탁 문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의료를 공공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 시장의 논리에 맡길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선택의 문제다. 공공병원의 민간위탁은 비용 절감이나 효율성이라는 명분과 달리, 필수의료 약화와 공공성 훼손으로 귀결된 사례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성남시의료원은 ‘적자 병원’이라는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희생되어 왔다. 그러나 공공병원의 존재 이유는 이윤이 아니라 시민의 건강권 보장이다. 위기 상황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것, 그것이 공공병원의 가치다. 성남시의료원이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수행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때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성남시의료원에 대한 민간위탁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재명 정부가 공공병원 위탁을 허용하지 않으며, 성남시의료원을 공공병원의 표준 모델로 육성하겠다는 국가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률 제정과 안정적인 재정 지원 등 실질적인 국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를 감염병 위기와 의료 재난 앞에서, 공공병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남시의료원 정상화는 단지 한 지역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의료 공공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정치적 계산과 방관으로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없다.

이같이 시민이 만든 병원은 시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성남시의료원이 다시 시민의 공공병원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이것이 공공의료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오랜 기다림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