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윤재갑 기자] 행정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는 곧 도시의 철학이 된다. 최근 성남시 인사 행정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승진 잡음이 아니다. 그것은 한 도시의 행정 시스템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경고음이다.
성남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최종성 의원이 제307회 정례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성남시 인사는 더 이상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승진과 배치가 능력과 성과가 아니라, 시장실에서 발신되는 ‘정무적 신호’를 기준으로 작동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월 17일 인사위원회에서 단행된 5급 사무관 승진 인사는 그 의혹을 현실로 만들었다. 승진자 10명 중 6명이 승진 후보자 배수 명부에 처음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최소 3~4차례 이상 후보군에 포함돼 누적된 평가와 경력을 통해 검증받는 것이 관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조직 전체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결과만이 아니다. 그 과정이 철저히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인사 검증은 특정 ‘라인’을 중심으로 비공식적으로 이뤄지고, 실무 부서의 평가와 의견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직원들의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조차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했다는 것이 내부의 공공연한 평가다. “어차피 인사는 정해져 있다”는 체념이 조직을 잠식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냉소가 공직사회를 파고들고 있다.

실제로 다년간 성실히 근무하며 승진을 준비해온 한 직원은 이번 인사 이후 극심한 박탈감 속에 결국 공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의 좌절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조직 전체의 사기를 꺾고, 행정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구조적 손실이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매년 사자성어를 통해 시정 철학을 제시해왔다. ‘해현경장’, ‘제구포신’, ‘성윤성공’. 모두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행정의 현장은 그 말들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말은 혁신을 외치지만, 인사는 폐쇄적이고 불투명하다. 공정을 말하지만, 기준은 보이지 않는다.

최종성 의원이 제안한 올해의 사자성어 ‘인사망사(人事亡事)’는 그래서 뼈아프다. 인사가 무너지면 모든 일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지금의 성남시는 인사의 붕괴가 행정 전반의 신뢰 붕괴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길 위에 서 있다. 이는 곧 정책 지연, 부서 간 협업 붕괴, 그리고 시민이 체감하는 행정 서비스의 질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사가 아니라 실천이다. 승진 심사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고, 인사위원회 심의 과정을 투명하게 기록·관리하며, 직원들의 의견이 실제로 반영되는 소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인사는 시장의 권한이지만, 동시에 시민의 신뢰 위에 행사되어야 할 공적 책임이다.

사람을 잃은 인사, 신뢰를 잃은 행정은 결국 도시를 잃는다. 성남시가 ‘인사망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제 성남시는 선택해야 한다. 말의 정치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인사의 정상화로 행정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