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윤재갑 기자] 지방자치는 숫자의 게임이 아니다. 예산은 다수결로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적 전리품이 아니라, 법과 절차, 그리고 시민의 삶을 관통하는 공적 약속이다. 그러나 성남시의회 2026년도 예산 심사 과정은 이 당연한 원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성남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가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최종성 의원이 던진 문제 제기는 단순한 정쟁이 아니다. 그것은 “이 예산이 과연 합법적인가”, “절차를 지켰는가”, “시민의 혈세를 다루는 최소한의 기준이 작동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씁쓸하게도 ‘아니오’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등학생 SOS 성남벨 지원사업’이다. 약 3억 1천만 원이 편성된 이 사업은 근거가 되는 조례조차 아직 공포되지 않았다.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예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법적 근거 없는 예산 편성은 예외가 아니라, 지방재정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집행부와 다수당은 아무렇지 않게 이를 통과시키려 했다. ‘법은 나중, 돈은 먼저’라는 기이한 행정 관행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예산을 쪼개는 방식으로 제도적 통제를 회피한 대목이다. ‘지역청년 이음사업’은 이미 본예산에 편성된 ‘청춘남녀 만남 행사’, 이른바 ‘솔로몬의 선택’ 사업과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동일한 조례, 유사한 대상과 목적. 다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는 총사업비 3억 원 이상일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할 경기도 투자심사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행정의 편의를 위해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한 전형적인 사례다.

상권활성화재단 출연금 1억 원 증액 시도는 더욱 기이하다. 예산편성지침과 절차를 위반한 사실이 수차례 지적됐고, 심지어 집행부조차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끝까지 증액을 강행하려 했다. 다수당의 의지가 법과 행정보다 위에 있다는 착각, 아니 오만이 드러난 장면이다.

결국 최종성 의원은 최종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표현이다. 적법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예산에 동의하는 것이 오히려 의회의 직무유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전원 찬성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문제 제기는 묵살됐고, 예산은 원안 그대로 가결됐다.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의회는 언제부터 숫자로 법을 덮는 기관이 되었는가. 다수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예산을 강행하는 순간, 예산 심의·조정이라는 의회의 핵심 기능은 스스로 붕괴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형식만 남은 의결과 시민 불신뿐이다.

예산은 고무줄이 아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그것은 시민이 낸 세금이며, 행정과 의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공적 결과물이다. 이 원칙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행정 전반에 대한 신뢰를 잠식한다.

이같이 성남시의회 예산 심사는 끝났지만,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다수의 이름으로 법을 무시한 결정은 반드시 기록되고, 평가받아야 한다. 숫자가 진실을 이길 수는 있어도, 끝내 역사를 이기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