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의 도시 인프라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탄소중립, 디지털 행정, 자율주행차 등 미래기술이 정책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지금, 정작 시민의 가장 본질적인 권리이자, 도시 존재 이유의 출발점이 되는 ‘생명권’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인천이다.

인천은 지난 2011년 전국 최초로 응급의료전용헬기, 즉 ‘닥터헬기’를 도입한 선도 도시다. 이후 14년간 1,593회에 걸쳐 출동하며, 1,608명의 환자를 이송했고, 그중 수백 명은 심각한 중증 외상이나 뇌졸중 환자로 골든타임 안에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이 수치는 단순한 행정 통계를 넘어선다. 그 안에는 구조 요청을 했던 가족의 절박함과, 하늘을 가르며 날아온 닥터 헬기를 맞이한 주민들의 눈물이 있고, 의료진과 파일럿의 헌신, 헬기 소음 너머로 들려오는 생존의 희망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은 지금까지 전용 계류장 하나 없이 진행되어 왔다. 이착륙의 안정성과 구조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 없이, 다목적 경기장이나 병원 부속 헬리포트에 의존하며, 위험과 불편을 감수해온 것이 현실이다.

인천시가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73억 원을 들여 남동구 월례공원 부지에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행정사업이 아닌, 응급의료체계의 획기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설계부터 주민 간담회, 소음 영향도 평가, 환경 영향성 검토까지 모든 절차를 수년간에 걸쳐 마무리했으며, 현재는 그야말로 실행 직전 단계다.

그러나 지난 지방의회 심의 과정에서 이 사업은 부결됐다. 일부 지역 주민들의 반대 의견과, 정치적 고려가 반영되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닥터헬기 계류장 문제는 단숨에 지역 갈등과 정쟁의 한복판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이에 대해 인천광역시의회 한민수 의원은 제302회 정례회 5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단 한 명의 생명도 정치의 변수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닥터헬기 계류장은 결코 정쟁의 대상이 아닌, 시민의 생명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정치가 생명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한 우려이며,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물론, 인근 주민들의 불안과 우려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헬기 소음, 안전사고 가능성, 재산가치 하락 등의 문제는 지역사회에서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인천시는 이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왔다.
우선 닥터헬기는 일반 군용기나 항공기처럼 잦은 이착륙을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소음이 나는 구조가 아니라, 긴급출동 시에만, 그것도 2~3분 정도의 제한적 이착륙이 전부다.
또한 계획된 방음벽(10m)을 설치하면 소음은 10db 이상 줄어들어, 체감 소음이 현격히 완화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계류장은 단지 헬기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긴급 환자를 위한 환승 구역, 의료진의 대기 공간, 연료 보급 및 장비 점검, 야간 비행 대응 시설 등 다목적 공공응급기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인천이 닥터헬기 도입 선도 도시인 만큼, 이제는 구조 체계를 뒷받침할 제도적·물리적 기반도 함께 갖춰야 한다. 한 의원은 “이 계류장은 남동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계류장은 인천 전역은 물론,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심지어 강화·옹진 일대 도서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생명줄이 될 것이다.
하늘길은 도로보다 빠르다. 병상 부족으로 수도권 외곽에서 인천으로 이송되는 환자나, 중증 외상으로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한 응급환자들에게 닥터헬기의 존재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보다 더 우선해야 할 행정이 있는가? 소음에 대한 민원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면, 모든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 사이렌도 울려선 안 되는가? 생명은 불편보다 가치가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공공성을 말할 수 있을까?

전용 계류장 설치는 단지 철근 콘크리트를 쌓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생명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의 문제다.
어떤 도시는 주차장 하나 만들기도 어렵고, 어떤 도시는 공원에 벤치 하나 놓는 데도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된 문제만큼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갈등의 구조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이제 남동구의회는 다시 한번 성숙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정치는 유불리가 아니라‘시민 생명권’이라는 절대적 기준 앞에서 공공성을 되새기고, 사회적 합의의 책임 있는 한 축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해야 한다.
인천시민 모두가 이 문제를 방관해서는 안 되며, 시민 역시 적극적인 지지와 공감으로 참여해야 한다.

공공안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
닥터헬기의 소음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소리이며, 닥터헬기의 계류장은 그 생명을 떠받치는 마지막 플랫폼이다. 우리는 지금, 그 플랫폼을 세울 수 있는 찬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에는 후회로 기록될 수 있다.
시민의 생명 앞에서 ‘나중’은 없다. 지금이 그때다.
인천은 이제, 생명을 위한 도시에 걸맞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