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조희동 기자] 해마다 6월이 오면, 우리는 어김없이 태극기를 반기로 내리고, 정오의 사이렌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눈을 감고 떠올려 본다. 전장의 흙먼지를 마시며 조국의 안녕을 위해 몸을 던졌던 청춘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이웃이자 친구였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그들의 바람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 이름 속에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 공동체가 역사를 기억하고 그 희생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물음이 담겨 있다. 호국(護國)이란 말 그대로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고, 보훈(報勳)이란 그 공을 잊지 않고 보답한다는 의미이다. 이 두 단어는 결코 과거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이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잊지 않고 미래로 이어가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6월의 역사에는 깊은 상처와 아픔이 배어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깨운 전쟁은 한반도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희생이 이어졌고, 전쟁의 참상은 오늘날까지도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참혹한 시간을 통해, 무엇이 소중한지를 배우게 되었다. 자유, 인권, 평화,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 이것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호국보훈의 달은 단순히 전쟁을 회상하거나 군인만을 기리는 시간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전쟁터에서 총을 든 이들뿐 아니라, 가정을 지키고 후방에서 산업을 일으키며 조국을 재건한 이들의 땀과 눈물도 함께 녹아 있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숨결을 되찾기 위해 치러야 했던 또 다른 싸움들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역시 6월에 일어났다. 그것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얻어낸 역사였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권리와 자유의 기초가 되었다.

지금까지 보훈은 주로 국가의 정책으로, 행정적 틀 안에서 다뤄졌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유가족에 대한 지원, 추모 행사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보훈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보훈은 점점 과거지향적 형식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생긴다.

보훈은 더 이상 행정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것은 국민 모두가 일상 속에서 체화하고 실천해야 할 문화이자 가치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감정적 공감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훈이 살아 있는 사회란,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함께 힘을 보태는 사회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이다. 더 이상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다수인 지금,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적 의무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전장에 서 있다. 기후 위기, 사회 양극화, 디지털 불평등, 혐오와 차별, 이 모든 사회적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내느냐에 따라 그 해법이 달라질 수있다.

이럴 때일수록, 보훈의 정신은 더욱 빛을 발한다. 자기희생과 공동체 연대라는 보훈의 본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회적 정의와 공존을 위한 보이지 않는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기억의 힘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점점 더 분열되고 무감각해질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결국 내일의 과거가 된다. 미래세대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지, 어떤 가치와 태도를 배워갈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젊은 세대에게 보훈은 더 이상 과거형의 애국심만으로는 다가갈 수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시대에 맞는 보훈의 재해석이다.

가령, 당신은 오늘 어떤 가치를 위해 행동했는가?, 공동체를 위해 내가 감수할 수 있는 책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훈 교육의 시작일 것이다. 기억은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부여하고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이제 다시 6월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현충일 묵념 사이렌이 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이 불릴 것이다. 그 이름들은 단지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에 흐르고 있는 역사 그 자체다.

보훈은 죽은 자를 기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삶의 방식을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내는가의 문제다. 보훈은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태도이며, 미래에 대한 다짐이다. 진정한 보훈은 군복 입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책임, 배려, 연대 속에서 함께 실현할 수 있는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기억의 계승자다. 그리고 그 기억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을 때, 진정한 호국과 보훈의 정신은 살아 숨 쉴 것이다. 6월, 잠시 멈추어 서서 조용히 생각해 보자, 오늘의 나는,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그 기억 앞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