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장초복 기자] 호의인 줄 알았는데…" 91세 홀몸 어르신 울린 ‘검은 미소’의 택시기사

- 의정부서 91세 할머니, 차량 구입 명목 1억 원 건넸으나 기사 잠적

- 외로움 파고든 ‘심리적 지배’ 사기 기승… “사회적 안전망 점검 절실”

[의정부] 6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도 없이 홀로 아파트를 지켜온 91세 심 모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다가온 택시기사의 ‘무료 운행’과 ‘따뜻한 식사 한 끼’는 가뭄에 단비 같은 호의였다. 하지만 그 호의의 끝은 평생 모은 노후 자금 1억 원을 통째로 앗아간 비정한 배신이었다.

"식사 같이하시죠"… 외로움 파고든 치밀한 접근

사건의 시작은 이달 초였다. 평소 자주 찾던 식당에 가기 위해 택시에 오른 심 할머니에게 기사 A씨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요금은 받지 않겠다"며 할머니의 환심을 산 뒤, 자신도 단골이라며 식사 자리에 동석한 것.

가족의 온기가 그리웠던 할머니에게 A씨는 친절한 발이 되어주었다. 서울과 의정부의 대형 병원을 오가는 긴 여정 동안 할머니를 정성껏 모셨고, 두 사람의 신뢰 관계는 급격히 깊어졌다. 경찰은 이를 전형적인 ‘그루밍(신뢰 관계 형성을 통한 심리적 지배)’ 수법으로 보고 있다.

온천 여행 제안하더니… 1억 원 인출 직후 ‘증발’

A씨의 본색은 여행 제안과 함께 드러났다. 함께 온천 여행을 가자며 고액의 경비를 암시했고, 이에 부담을 느낀 할머니가 차라리 차량을 구매해 이동하자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1억 원을 요구했다.

할머니는 지난 10일, 평생 모은 재산을 1,000만 원권 수표 10장으로 인출해 건넸다. A씨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수표를 자신의 계좌에 입금한 뒤 바로 다음 날 전액 현금으로 찾아 자취를 감췄다. 현재 A씨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으며, 할머니와의 모든 연결 고리를 끊고 잠적한 상태다.

"판단 착오였다" 자책하는 할머니… 우리 사회에 던진 숙제

거액을 잃은 심 할머니는 현재 심각한 심리적 불안과 우울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요양보호센터 관계자는 "경제적 타격도 크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이용당했다는 배신감에 어르신이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하신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의정부경찰서는 이번 사건을 강력팀에 배당하고 A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홀몸 노인의 외로움을 노린 범죄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 사회복지 전문가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간 사기를 넘어, 고립된 노인을 보호하지 못한 우리 사회 안전망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고액 인출 시 금융기관의 모니터링 강화와 지역 사회의 밀착 관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속한 수사를 통해 피의자를 검거하고 피해 금액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91세 노인의 마지막 신뢰를 저버린 이번 사건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