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조희동 기자] 인천광역시가 GS리테일과 협약하여 ‘청년마음으로 편의점’이라는 이름의 정신건강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내 GS25 편의점 12곳을 지정해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정신건강 자가검진을 하고 상담 신청까지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인천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청년마음건강센터가 주도하는 이 사업은 고립‧은둔 청년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심리적 돌봄과 일상 회복을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언뜻 보기에 이는 청년 정신건강을 위한 새로운 공공정책의 사례로 보일 수 있다. 접근성이 높은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활용하고, QR코드를 통해 디지털 방식으로 자가진단을 유도하며, 대면과 비대면 상담으로 연계하는 구조는 기술과 복지가 만나는 접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정책이 진정 청년의 ‘마음’을 돌보고 있는지, 혹은 그저 돌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청년마음으로 편의점’은 말 그대로 청년의 마음이 편의점에서 머물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과연 편의점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일까?
편의점은 일상 속 가까운 공간이자, 상업적 효율이 극대화된 구조이다. 회전율과 동선이 계산되어 있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내밀한 고통, 지속된 외로움, 혹은 위기 상태의 심리를 진단하고 상담으로 이끈다는 구상은 현실과의 괴리를 안고 있다. 특히 고립·은둔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 감정 표현에 대한 공포가 맞물려 있는 상태다.

그러한 청년이 일반 시민들과 마주치며 구매가 오가는 공간에서 ‘내 마음을 점검한다’는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공간에서 QR코드를 찍는 행위 자체가 이미 누군가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정신건강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단계까지 도달한 청년은 이미 비교적 회복 단계에 가까운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진정으로 정책이 포착하고자 하는 ‘고립된 청년’은 그 이전 단계에 있다. 그들은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두렵다.

이번 사업은 편의점 점주와 본사 담당자들에게 고립·은둔 청년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간담회와 교육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점주들은 이미 생계와 직결된 업무로 바쁜 사람들이다. 고객의 정신건강 상태를 분별하고 민감하게 개입해야 하는 역할은 본질적으로 전문가의 몫이다.

점주나 직원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청년을 발견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신고? 상담 연결? 혹은 무시?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민감한 정신건강 문제에 비전문가가 개입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칫 의도치 않은 낙인과 오해를 낳고, 청년이 더 깊이 숨어버리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발견'이라는 복지의 최전선을 기업과 개인 점주에게 떠맡기는 셈이다. 이는 공공정책의 책임을 사적 공간과 민간 인력에 분산시키는 구조로, 공공이 해야 할 책임을 외주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시민 친화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처럼 보이지만, 정작 정책 대상자와 현장 운영자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구조다.

최근 몇 년 간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우울증, 불안장애, 번아웃, 고립 등은 이제 사회적으로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고, 이에 대한 서비스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앱 기반 상담 플랫폼, 심리검사 키오스크, 자가진단 챗봇 등 기술과 결합한 다양한 시도들이 정신건강을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진입시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 있다. 정신건강을 지나치게 '서비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QR코드로 진단하고, 온라인 폼으로 신청하고, 전문가와 1~2회 상담을 진행한 뒤 ‘도움이 제공되었다’고 간주하는 구조는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회복의 시간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고립·은둔 청년은 단순히 정보를 몰라서 혹은 접근성이 낮아서 심리 상담을 받지 않는 게 아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세상과 멀어져 있으며, 수많은 실망과 실패를 겪으며 스스로를 ‘도움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경우도 많다.

정신건강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시스템을 설치하고 도구를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회복될 수 있는 관계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즉,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에는 기술보다 사람이, 상담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청년마음으로 편의점’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책의 설계부터 당사자인 청년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행정기관과 기업이 중심에 있고, 청년은 대상화된 채 정책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용자’로만 등장한다. 이는 위험하다. 청년 정신건강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고립‧은둔 청년’이라는 용어 사용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이 용어는 정책적 식별을 위해 편리할 수는 있지만, 대상자에게는 자기 낙인의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고립된 청년일수록 자신이 ‘관리 대상’이 되거나 ‘문제 청년’으로 취급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책이 진정 그들의 마음에 닿고자 한다면, 그들을 이해받아야 할 존재로 다루어야지, 관리되어야 할 문제로 다뤄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단순히 반대만 할 수는 없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며, 지금보다 더 넓고 깊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 방식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편의점보다는 심리적 안전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 예컨대 지역 커뮤니티센터, 청년지원센터, 공공도서관, 대학 공간 등에서 상시적인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한다.
일회성 검진이나 상담 연계가 아닌, 주기적인 그룹 모임, 멘토링, 또래 네트워크 등의 장기적 정서 지지 체계가 필요하다.
정책을 ‘청년을 위한’에서 ‘청년과 함께’로 전환해야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기획부터 반영돼야 진정한 수요자 중심 정책이 된다.
'청년새봄'과 같은 서포터즈 모델은 훌륭한 시작이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 홍보나 스크립트 활동을 넘어서, 또래 집단 속에서 신뢰 기반의 관계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과 돌봄도 병행돼야 한다.

‘청년마음으로 편의점’이라는 이름은 따뜻하다. 하지만 정책은 이름이 아니라 내용으로 평가받는다. 그 내용이 청년의 고통에 얼마나 민감하고, 관계와 신뢰를 어떻게 설계했는지가 핵심이다. 마음을 다룬다는 건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듣고, 실패해도 기다려주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편의점이 아니라 청년의 마음 곁에 진짜로 머무를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